1990년대 말, 소프트웨어 산업은 SaaS(Software as a Service)의 등장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소프트웨어는 더 이상 CD에 담겨 팔리는 제품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접속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었다. 그 이후 25년 동안, SaaS는 빠르게 진화하며 기업 IT 환경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제 이 SaaS 산업이 다시 한 번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다. 바로 AI, 그중에서도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AI가 SaaS의 구조와 작동 방식 전반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Bain & Company가 발표한 보고서 「Will AI Disrupt SaaS?」는 이 새로운 기술적 물결이 SaaS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으며, SaaS 기업들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생존을 넘어 새로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분석한다. 보고서는 서두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혼란은 필수이지만, 도태는 선택이다(Disruption is mandatory. Obsolescence is optional).” 이는 현재 상황의 중대함을 명확히 보여준다.

SaaS를 대체할 수 있는 AI의 부상
생성형 AI와 에이전트형 AI는 단순한 보조 기능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실행하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 기술들은 이미 SaaS의 핵심 기능을 잠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Cursor의 AI 코드 에디터는 반복적인 코딩 작업을 스스로 수행하며, ServiceNow에서는 고객지원 티켓을 사람이 아닌 AI가 처리하고 있다. 또한 Workday는 AI를 통해 회계 분개를 자동화하고 있으며, Adobe의 마케팅 플랫폼에서는 광고 문구 생성도 AI가 담당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더 이상 ‘실험적인 시도’가 아니다. 보고서는 AI의 비용 효율성과 성능 향상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OpenAI의 최신 모델인 GPT-4 계열의 경우, 비용은 두 달 만에 80% 가까이 하락했고, 정확도는 오히려 향상되었다. 이러한 추세라면 향후 2~3년 내에 대부분의 규칙 기반 디지털 작업은 ‘인간+소프트웨어’에서 ‘AI 에이전트+API’ 구조로 완전히 재편될 것으로 예측된다.
SaaS가 직면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
보고서는 AI 기술이 SaaS에 미치는 영향을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분류한다.
첫 번째는 AI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No AI)이다. 이는 매우 드물고 제한적인 영역으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AI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AI가 SaaS를 보완하는 경우(AI enhances SaaS)이다. 이 경우 AI는 인간의 작업을 대체하지 않고, 단순 반복 작업을 줄이거나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AI가 기존 SaaS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경우(AI outshines SaaS)이다. 여기에서는 AI가 기존의 SaaS 기능을 능가하여 시장의 중심이 되며, 고객은 더 이상 SaaS 자체가 아닌 AI 기반 도구에 주목하게 된다. 네 번째는 AI가 SaaS를 잠식하는 경우(AI cannibalizes SaaS)이다. AI가 SaaS 기능을 직접 대체하면서 기존 공급자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는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지출 축소(Spending compresses)로, AI가 SaaS 위에 얹히면서 고객이 기존보다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가치를 얻을 수 있게 되며, 이는 SaaS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 시나리오들은 단지 이론적인 구분이 아니다. 실제 SaaS 기업들이 자신이 제공하는 기능이 어느 시나리오에 속하는지를 파악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Bain의 핵심 메시지다.
자동화 가능성과 침투력: AI가 SaaS에 영향을 미치는 두 축
AI가 SaaS를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를 판단하기 위해 보고서는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사용자 작업의 자동화 가능성이다. 반복성이 높은지, 오류 위험이 있는지, 맥락에 따라 판단이 필요한지, 그리고 데이터가 충분하고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분석한다. 두 번째는 SaaS 워크플로우에 대한 AI의 침투 가능성이다. 이 부분은 산업 표준화 여부, 전환 비용, 규제 장벽, 독점 데이터 여부, 외부 관측 가능성 등을 통해 평가한다.
이 두 축을 기준으로 각 SaaS 기능이 어느 전략적 영역에 속하는지를 파악하면, 기업은 자신이 어떤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마주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Medidata의 임상시험 무작위화 기능은 규제가 강하고 인간의 전문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AI가 SaaS를 강화하는 영역’에 속한다. 반면, ADP의 근무 시간 승인 처리나 Intercom의 1차 고객응대 업무는 자동화가 매우 쉬운 영역이며, 경쟁사 AI가 쉽게 복제할 수 있어 ‘AI가 SaaS를 잠식하는 영역’으로 분류된다.
AI 중심의 생태계로의 전환
보고서는 AI 중심의 생태계가 기존 SaaS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계층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크게 세 가지 층위로 나뉜다.
- 시스템 오브 레코드(Systems of Record): 핵심 데이터를 보관하고 일관성과 규정을 관리하는 계층이다. Workday처럼 고유한 데이터 구조와 규제 기반 논리를 갖춘 SaaS가 여기에 속한다.
- 에이전트 운영체제(Agent Operating System): 작업을 계획하고 툴을 호출하며 사용자 요청을 실행하는 AI 운영 플랫폼이다. Microsoft Azure AI Foundry, Google Vertex AI Agent Builder 등이 해당된다.
- 결과 인터페이스(Outcome Interface): 사용자의 명령을 자연어로 받아들이고 결과를 보여주는 사용자 인터페이스다. Slack, Teams, 모바일 앱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층 간의 연결을 위한 공통 언어, 즉 의미 계층(Semantic Layer)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는 Anthropic의 Model Context Protocol(MCP)이나 Google의 Agent2Agent(A2A)와 같은 기술이 등장했지만, 표준화된 데이터 용어 정의, 정책 규정 등은 여전히 미비하다. Bain은 이 의미 계층의 주도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AI 생태계의 권력 구조가 재편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SaaS 기업이 취해야 할 전략적 방향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속에서 SaaS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Bain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AI를 제품 중심이 아닌 전략 중심에 배치해야 한다. 고객이 소프트웨어로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핵심 작업을 AI가 대신 처리할 수 있도록 제품을 재설계해야 한다. 결과 중심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고객이 AI를 통해 실제 비용 절감이나 시간 절약 등의 성과를 경험하게 만들어야 한다.
둘째, 독점 데이터를 경쟁 우위로 삼아야 한다. AI 모델 자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고객 행동 데이터, 산업별 전문 지식, 내부 기록 등의 고유 데이터는 SaaS 기업만이 보유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더 정밀한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AI 생태계 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셋째, 기존의 사용자 기반 가격 모델에서 벗어나 결과 기반 과금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만약 AI가 사람을 대신해 작업을 수행한다면, 고객은 ‘접속 인원 수’가 아니라 ‘업무 처리량’에 돈을 지불할 것이다. Intercom과 Salesforce는 이미 이와 같은 가격 체계 실험에 들어간 상태다.
넷째, 의미 계층에서 표준을 선도하고, 전략적으로 오픈소싱을 활용해야 한다. 예컨대 Guidewire처럼 자신이 우위에 있는 도메인 스키마를 공개하여 업계 표준을 주도할 수 있다. 단, 모든 것을 개방하면 경쟁자에게 기회를 주는 셈이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조직 전반에 걸쳐 AI에 대한 이해도와 실행 능력을 높여야 한다. 단지 기술 팀만 AI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 세일즈, 고객지원 등 모든 부서가 자사 AI 기능의 작동 원리와 고객 가치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SaaS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AI는 SaaS의 핵심 기능을 잠식하거나 대체하면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무너뜨릴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변화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AI를 중심에 두고 제품을 재설계하고, 독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며, 새로운 플랫폼 구조와 가격 모델에 적응한 기업은 오히려 이 변화 속에서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Bain은 이 보고서를 통해 단언한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도태될지는 기업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SaaS의 다음 세대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제공자가 아니라, AI 중심의 업무 수행 플랫폼으로 진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업에게 열릴 것이다.

관련참고기사:Will AI Disrupt Sa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