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던 테크 스타트업 ‘빌더닷에이아이(Builder.ai)’의 수백 명의 직원은 베트남 호치민의 5성급 호텔로 향했다. 유명 비즈니스 인사들이 참여하는 화려한 기업 워크숍이 열렸고, 그 중심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 사친 데브 두갈(Sachin Dev Dugal)이 있었다. 불과 몇 주 전,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 카타르 국부펀드 등으로부터 2억 5천만 달러라는 막대한 투자를 유치하며 축배를 들었다. 그들의 비전은 ‘AI을 활용해 복잡하고 값비싼 맞춤형 앱 개발을 자동화한다’는 것이었고, AI 열풍에 힘입어 기업 가치는 15억 달러(약 2조 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화려했던 신기루는 처참히 무너졌다. Builder.ai는 대부분의 앱 개발 과정을 AI가 처리하는 세계 최초의 플랫폼이라 주장했지만, 그 실체는 인도, 베트남, 우크라이나 등지의 아웃소싱 개발자들의 노동력으로 유지되는 ‘연기와 거울의 집’이었다. 결국 남은 것은 의심스러운 사업 방식, 회계 부정 혐의, 그리고 허영심 가득한 마케팅뿐이었다. BBC, 마이크로소프트, 버진 그룹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신뢰를 얻어냈던 10억 달러 가치의 스타트업이 어떻게 업계 전체를 속이고 몰락했는지 그 전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였다.
“피자 주문처럼 쉬운 앱 개발” – 거대한 비전의 시작
Builder.ai의 시작은 2016년 ‘엔지니어닷에이아이(Engineer.ai)’라는 이름의 런던 기반 스타트업이었다. 창업자 사친 데브 두갈은 친구 수라브 두갈(Saurabh Dugal)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을 민주화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놀랍도록 간단했다. 바로 “앱 개발은 피자를 주문하는 것만큼 쉽다”는 것이었다.
두갈은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이 비유를 사용하며 비전문가도 쉽게 앱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구축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확장 방법도, 필요한 서비스 파트너도 모른다. 하지만 저희 플랫폼은 ‘구축, 운영, 확장’이라는 비전 하에 설계됐다. 동네 피자 가게가 저희 플랫폼을 통해 도미노피자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들의 사업 모델은 다섯 단계로 요약됐다.
- AI ‘나타샤’와 채팅: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 정확한 가격과 일정 확인: 고정된 비용을 제시받는다.
- 전담 전문가 배정: 프로젝트를 관리할 전문가를 만난다.
- AI가 레고 블록처럼 앱 기능 조립: 핵심 기능이 자동화되어 구축된다.
- 인간 전문가의 맞춤화 및 출시: 세부 사항을 다듬어 최종 앱을 완성한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빌더 스튜디오(Builder Studio)’라는 자체 개발 플랫폼이 있었다.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을 명시하면, 재사용 가능한 코드 구성 요소를 AI가 자동으로 조립하고, 소수의 인간 전문가가 감독하여 앱을 완성한다는 개념이었다. 이처럼 아이디어 구상부터 앱 제작, 호스팅, 사후 관리까지 제공하는 ‘엔드투엔드(End-to-End)’ 솔루션은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들에게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두갈은 “우리 앱의 80%는 AI가 만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며 기술적 우위를 과시했다.
거물 투자자들을 사로잡은 성장 신화
초기 고객 확보에 성공한 두갈은 다음 목표로 ‘소프트뱅크(SoftBank)’를 정했다. 소프트뱅크의 창업자 손정의(Masayoshi Son)는 “똑똑한 전략보다 미친 아이디어를 선호”하고, 직관에 따라 거액을 투자하는 성향으로 유명했다. 이는 두갈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투자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포장했다. 피자 주문, 기적의 AI, 레고 블록 코드 등 현란한 수사를 동원한 그의 발표는 성공적이었고, 소프트뱅크로부터 2,950만 달러(약 400억 원)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하는 쾌거를 이뤘다.
투자 유치 후, Engineer.ai는 공식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2,4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으며, 2020년 말까지 매출 1억 달러 돌파를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BBC, 버진 그룹 등을 고객사로 언급하며 신뢰도를 높였다.
벤처캐피털 투자 세계에서 기업 가치는 현재 수익보다 ‘성장률’에 의해 결정된다. 두갈은 이 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안정적인 성장은 지루하다. 로켓처럼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 신화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AI와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들은 그의 주장에 의문을 품었지만, 내부를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다.
균열의 시작 – 과장된 기술력과 내부 고발
소프트뱅크의 승인 도장을 받은 Engineer.ai는 실리콘밸리의 다른 스타트업들처럼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2019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AI 스타트업 붐, 과장된 기술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Engineer.ai를 정면으로 겨냥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WSJ는 “Engineer.ai는 AI 기술로 모바일 앱 개발을 자동화한다고 주장하지만, 다수의 전현직 직원들은 회사가 고객과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AI 역량을 과장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또한, AI 전문 매체인 AI-Business.com은 회사가 주장하는 엔지니어 수에 의문을 제기했다. 2018년 말 32,000명이라던 엔지니어 네트워크가 2019년 5월에는 75,000명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마법 같은 AI가 있다면 왜 이렇게 많은 인간 엔지니어가 필요한가?”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제기됐다.
사방에서 압박을 느낀 두갈은 비판이 제기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명을 ‘Engineer.ai’에서 ‘Builder.ai’로 변경했다. 이는 논란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명백한 시도였지만, 사업 방식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부정적인 언론 보도를 무시하고, 고객 추천사를 활용해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열중했다.
무너지는 신기루 – 회계 부정과 법적 분쟁
2023년까지 Builder.ai는 총 4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두갈은 사내에서 자신을 ‘최고 마법사(Chief Wizard)’라 부르도록 독려했고, 기술적인 질문에는 요리, 레고, 피자 주문 같은 비유로 교묘하게 답변을 회피했다. 회사의 기업 가치는 15억 달러에 달했고, 세대의 가장 유망한 스타트업 중 하나로 칭송받았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곪아 터지기 직전이었다. 전직 임원 로버트 호디움(Robert Hodium)은 회사의 자동화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해고당했다며 500만 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2024년 7월부터는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공석인 채로 운영됐고, 창업자와 오랜 관계를 맺어온 회계감사인이 재무를 담당하며 이해상충 문제를 야기했다. 실적 목표 달성에 실패하자 웹사이트의 목표 수치를 몰래 낮추는 일도 벌어졌다.
결정타는 인도 당국의 수사였다. 두갈의 사업 파트너이자 회사에 깊이 관여했던 수라브 두갈이 운영하던 ‘비디오콘(Videocon)’이라는 회사가 자금 세탁 및 외환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수라브는 사기성 은행 대출에 연루된 혐의를 받았다.
이후 파이낸셜타임스(FT)의 폭로로 Builder.ai의 회계 부정 실태가 드러났다. 이들은 제3의 중개자를 통해 거래를 일으키고 다시 회수하는 ‘자전거래(Round-tripping)’ 방식을 사용해 매출을 인위적으로 부풀렸다. 이 방식을 통해 실제 경제적 가치 창출 없이 장부상 매출만 300% 이상 부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직원은 이러한 관행을 “의심스러운 관행의 바다”라고 묘사했다.
화려한 제국의 몰락과 진실
사기 혐의가 드러나자 채권자 중 하나인 볼라(Voila)가 약 3,700만 달러의 자금을 회수하며 이탈했고, 연쇄적인 자금 이탈과 조사가 이어졌다. 결국 2025년 3월, 사친 데브 두갈은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 임명된 마니테드 라티아(Manited Ratia)는 즉시 내부 조사에 착수했고,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했다.
2024년, 회사가 주장했던 매출 2억 2,000만 달러는 사실 약 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남은 자금은 500만 달러뿐이었고, 회사는 운영을 중단하고 전 세계적으로 약 1,000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가장 큰 거짓말이었던 ‘80% AI 자동화’의 진실도 밝혀졌다. 실제로는 전 세계, 특히 인도에 기반을 둔 700명 이상의 엔지니어들이 저임금으로 일하며 고객의 요청을 수작업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버시(Vercie)’라는 아웃소싱 회사를 통해 고용됐는데, 이 회사는 앞서 언급된 자전거래 사기에 연루된 바로 그 회사였다.
결국 Builder.ai 신화는 사기성 이익, 회계 조작, 자금 세탁, 그리고 저임금 노동력 착취 위에 세워진 거대한 사기극으로 막을 내렸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사기극이었나? – AI 시대의 교훈
Builder.ai의 사기 행각을 제외하고, 그 핵심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두갈이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것이다. 세일즈포스(Salesforce)의 CEO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는 최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엔지니어링, 코딩, 지원과 같은 핵심 기능에서 올해 30~50%의 생산성 향상을 목격하고 있다. AI가 세일즈포스에서 이미 30~50%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베니오프의 말처럼, AI는 실제로 코딩과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인간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5년 후에는 Builder.ai가 약속했던 비전이 기술적으로 완전히 실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Builder.ai의 문제는 기술적 비전이 아니라 윤리적 파산이었다. 그들은 AI라는 키워드를 이용해 투자자들을 현혹하고, 실제로는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허황된 성장을 꾸며냈다. Builder.ai의 사례는 현재의 ‘AI 골드러시’ 속에서 과대광고와 실체를 구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강력한 경고이다. 투자자, 기업가, 그리고 소비자 모두가 화려한 약속 이면에 있는 진정한 기술력과 비즈니스 모델을 꿰뚫어 보는 냉철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관련참고기사:Builder.ai – 역사상 가장 큰 AI 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