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미국 대형 벤처캐피털(VC)인 제너럴 캐털리스트(General Catalyst)를 이끌고 있는 헤만트 타네자(Hemant Taneja) 최고경영자는 실리콘밸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투자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VC는 유망 스타트업에 자본을 투자하는 데 집중하지만, 제너럴 캐털리스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전통 산업 기업을 인수해 인공지능(AI)을 접목시키는 ‘AI 롤업 전략(AI roll-up strategy)’을 병행하고 있다.
타네자는 “AI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사슬과 사회 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전환점”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그의 주도 아래 제너럴 캐털리스트는 Anthropic, Mistral 같은 글로벌 AI 선두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동시에, 의료기관과 서비스 기업을 인수해 AI로 체질 개선을 꾀하고 있다. 이같은 과감한 전략은 지난해 80억 달러에 달하는 신규 펀드 조성으로 이어졌다.

AI 롤업 전략: 평범한 기업을 AI 기반 기업으로 탈바꿈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추진하는 AI 롤업 전략은 본질적으로 노동 집약적 서비스 기업을 인수한 뒤 AI를 접목해 운영 효율성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식이다. 타네자는 이를 “전통적 아웃소싱 모델의 다음 단계”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과거 글로벌 기업들이 필리핀이나 인도에 콜센터를 아웃소싱하던 것처럼, 이제는 그 인력을 AI 에이전트로 대체해 비용을 줄이고 대응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실제로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육성한 기업 ‘크레센도(Crescendo)’는 고객센터 업무를 AI로 자동화하고 있으며, ‘히포크래틱(Hippocratic)’은 AI 간호사를 개발해 환자와의 전화 상담을 대규모로 처리하고 있다. 현재 이 AI 간호사는 매달 수십만~수백만 통의 전화를 수행하며, 기존 간호사가 담당하던 업무를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러한 변화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특히 큰 파급력을 보인다. 의료기관은 제한된 인력과 비용 문제로 환자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왔는데, AI 간호사를 활용하면 더 많은 환자에게 더 잦은 연락과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비용 절감을 넘어, 환자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으로 평가된다.
AI 투자 시장의 거품과 모호성
현재 AI 투자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미스트랄(Mistral) 등 모델 기업들의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으며, 수많은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있다. 그러나 타네자는 이 상황을 “최고도의 모호성(peak ambiguity)”이라 표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AI 모델이 발전할수록 그 위에 구축된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의 기능이 빠르게 흡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GPT-3 등장 당시 인기를 끌었던 많은 스타트업이 GPT-4의 기능 통합으로 인해 시장에서 사라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가질지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타네자는 “버블은 오히려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본다. 자본과 인재가 한 곳으로 모이며, 일부 기업은 소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업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AI가 만든 새로운 상장 기업과 M&A 시장
타네자는 향후 10년간 “오늘날 저마진 서비스 기업이 AI를 통해 혁신해 새로운 상장 기업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AI 시장에서는 인재와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M&A 시장의 활발한 움직임도 예상된다. 대형 기술 기업이 전략적 판단을 잘못했을 경우, 빠르게 시장을 따라잡기 위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과 ‘주권 AI(Sovereign AI)’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타네자는 특히 주권 AI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각 국가·지역이 자체 AI 모델과 인프라를 갖추지 못하면, 미국이나 중국 기술 기업에 종속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Mistral은 이러한 주권 AI 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타네자는 “유럽이 제조업을 중국에 내줬듯, AI 생산성까지 해외에 내주면 경제적 회복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따라서 그는 지역별로 자국의 노동력과 데이터 자원을 AI 생산성으로 전환해야만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책임 있는 AI: 포용적 번영을 위한 필수 조건
타네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 개념은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이다. 그는 지난 기술 사이클에서 소셜미디어가 사회적 양극화와 갈등을 심화시킨 사례를 거론하며, “AI는 그보다 더 큰 사회적 충격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AI가 창출하는 생산성은 소수 기업과 국가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불평등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 그는 이를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이라는 화두로 정리하며, AI 확산 과정에서 사회 전체가 혜택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본주의 자체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는 사회의 신뢰와 동의라는 특권(privilege) 위에 존재한다. 그 특권이 무너지면 자본주의도 유지될 수 없다.”
General Catalyst의 AI 전략은 단순한 스타트업 투자를 넘어, 기존 산업을 AI로 재창조하고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하는 새로운 벤처 모델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혁신과 생산성을, 장기적으로는 포용적 성장과 사회적 합의를 함께 요구한다.
AI 투자는 지금 “거품”과 “모호성” 속에 있지만, 타네자는 이 과정을 거쳐 결국 지속 가능한 기업과 산업 구조가 탄생할 것이라 본다. 다만 그 전제는 명확하다. 일자리 전환과 재교육, 책임 있는 AI, 지역별 주권 AI 전략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AI 혁신은 불평등과 갈등만을 증폭시킬 수 있다.
AI는 인류에게 거대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연결할지는 결국 투자자·기업·정부·노동자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General Catalyst의 행보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실험이자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참고기사:General Catalyst’s Hemant Taneja: AI investors are navigating ‘peak ambigu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