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최종 목표는 코딩을 훨씬 더 나은 무언가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이 담대한 선언은 AI 코딩 플랫폼 ‘커서(Cursor)’를 개발한 애니피어(Anysphere)의 공동창업자이자 CEO인 마이클 트루(Michael Tru)의 입에서 나왔다. 커서는 출시 20개월 만에 연간 반복 매출(ARR) 1억 달러를 달성하고, 기업 가치 90억 달러를 인정받으며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들의 성공 뒤에는 단순히 개발자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소프트웨어 개발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려는 거대한 비전이 자리 잡고 있다. 트루 CEO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이 원하는 것을 설명하기만 하면 소프트웨어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견한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의 도래: ‘의도 기반 개발’
트루와 그의 공동창업자들이 코딩에 매료된 이유는 ‘무언가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제 소프트웨어로 구현하는 과정은 수백만 줄의 난해한 코드를 편집하고 수많은 노동을 투입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애니피어는 이 과정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자 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미래는 ‘의도 기반 프로그래밍’으로, 개발자가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과 외형을 정의하면 AI가 나머지 세부 사항을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는 현재 일부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즉 코드의 세부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AI에 의존해 감으로 코딩하는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트루는 “수백만 줄의 코드와 수십, 수백 명의 개발자가 얽힌 전문적인 환경에서 코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코딩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전문 개발 환경의 복잡성과 안정성을 감당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현재 커서 내에서는 AI가 생성하는 코드의 비율이 평균 40~50%에 달하지만, 여전히 모든 결과물은 인간 개발자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트루는 “AI가 단순히 생산성 도구를 넘어, 개발의 주체가 되는 지점으로 도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이는 AI가 코드의 일부를 작성하는 ‘조수’에서, 개발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해야 함을 의미한다.
슈퍼휴먼 AI 에이전트를 향한 여정의 장애물
완벽한 코딩 AI, 즉 ‘슈퍼휴먼 에이전트’를 구현하기까지는 여러 기술적 난관이 존재한다. 트루가 꼽는 핵심적인 병목 현상은 다음과 같다.
- 컨텍스트 창(Context Window)의 한계: 1,000만 줄의 코드는 약 1억 개의 토큰에 해당하는데, 현재의 AI 모델이 이 방대한 양의 정보를 한 번에 효과적으로 처리하기는 어렵다.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중요한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지속적인 학습(Continual Learning)의 부재: AI 모델은 프로젝트의 역사, 조직의 문화, 과거의 실패 사례, 동료 개발자의 성향과 같은 비정형적인 맥락을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마치 신입 개발자가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과정과 유사하며, 현재 AI 분야에서는 아직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다.
- 다중 모드(Multimodality)의 필요성: 진정한 소프트웨어 개발은 코드 작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코드를 직접 실행하고, 데이터독(Datadog) 같은 모니터링 툴의 로그를 분석하며, 다양한 개발 도구와 상호작용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 정밀한 제어를 위한 UI: 설령 인간을 뛰어넘는 코딩 AI가 등장하더라도, 개발자는 최종 결과물을 픽셀 단위로 미세하게 조정하거나 로직의 특정 부분을 직접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더 높은 수준의 언어나, UI를 직접 조작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
기계가 코드를 대체할 때, 인간에게 남는 것: ‘취향’
AI가 코딩의 기술적인 부분을 자동화한다면, 인간 개발자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까? 트루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한 가지는 바로 취향(Taste)“이라고 단언한다. 여기서 취향이란 단순히 시각적인 미학을 넘어, 소프트웨어의 로직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판단력을 포함한다.
현재의 프로그래밍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인간 컴파일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작업이다. 미래에는 AI가 이 번역 작업을 대부분 대신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발자의 역할은 저수준의 구현에서 벗어나, 제품의 핵심 가치와 논리적 구조를 설계하는 ‘로직 디자이너(Logic Designer)’로 진화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개발 속도는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과거에는 막대한 개발 비용 때문에 시도조차 못 했던 틈새 분야의 소프트웨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트루는 과거 바이오테크 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소프트웨어 개발이 핵심 역량이 아닌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필요한 도구를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90억 달러 가치 기업의 탄생 비화: 실패에서 배운 교훈
커서의 성공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MIT에서 만난 4명의 공동창업자는 AI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으로 뭉쳤지만, 그들의 첫 번째 도전은 다른 곳을 향했다. 바로 기계공학도를 위한 3D 캐드(CAD) 설계 보조 도구였다. 그들은 3D 형상의 다음 변화를 예측하는 ‘3D 자동완성 모델’을 훈련시키는 등 1년 가까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하지만 이들은 곧 한계에 부딪혔다. 코딩에 비해 3D 모델링 데이터는 인터넷에 턱없이 부족했고, 당시 AI 기술은 3D 지오메트리를 다루기에는 미성숙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창업팀 스스로가 기계공학보다 코딩에 훨씬 더 큰 열정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트루는 “회사를 세우는 것은 어차피 힘든 일이니, 당신이 진정으로 흥분하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
캐드 프로젝트를 접은 후, 그들은 자연스럽게 코딩의 미래로 눈을 돌렸다. 당시 깃헙 코파일럿(GitHub Copilot)이 있었고 수십 개의 경쟁사가 있었지만, 그들은 기존 플레이어들이 AI를 통한 점진적 개선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애니피어 팀은 AI 모델의 성능이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에 따라 예측 가능하게 향상된다는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s)’을 굳게 믿었다. 그들은 이 법칙의 연장선, 즉 ‘라인을 따라가면(follow the line)’ 완전히 다른 차원의 코딩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미래에 과감히 베팅했다.
커서의 성공 전략: ‘데모 최적화’의 함정을 피하는 법
커서의 성공은 몇 가지 비직관적인 전략적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 확장 프로그램이 아닌 자체 편집기 개발: 당시 대부분의 AI 코딩 도구는 기존 편집기의 확장 프로그램 형태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커서는 처음부터 자체 편집기를 만들었다. 이는 깃헙 코파일럿 초기 버전조차 간단한 기능 구현을 위해 편집기 자체를 수정해야 했다는 내부 이야기를 통해 얻은 교훈이었다. 미래에 프로그래밍의 형태가 급격히 바뀔 때, 편집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 ‘유료 파워 유저’에 집중: 회사의 성공 지표를 일간 활성 사용자(DAU) 같은 허황된 수치가 아닌, ‘일주일에 4~5일 이상 AI 기능을 사용하는 유료 파워 유저’로 삼았다. 이는 전문가들이 실제 업무에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느끼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 도그푸딩(Dogfooding) 문화: 화려한 데모 영상에 최적화하려는 유혹을 경계하고, 팀원들이 매일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하며 개발하는 ‘도그푸딩’ 문화를 철저히 지켰다. 이를 통해 속도, 안정성, 지능 등 실제 사용 환경에서 중요한 요소들을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었다.
- 신중한 초기 채용: 회사의 성장을 위해 인재 확보가 시급했지만, 처음 10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데 극도로 신중을 기했다. 트루는 “초기 10명의 핵심 인재는 미래 성장의 가속기이자, 회사의 높은 기준을 지키는 면역 체계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기술 역량과 제품 마인드를 겸비한 제너럴리스트들이었다.
AI 시대의 해자(Moat): ‘아이폰 모멘트’를 향한 경주
AI 기술이 빠르게 평준화되는 시대에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 즉 ‘해자’는 어디에 있을까? 트루는 이 시장이 전통적인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과 다르다고 본다. 그는 현재 상황을 1990년대 말의 검색 엔진 시장에 비유한다. 제품이 좋아질 수 있는 상한선이 매우 높고,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제품이 더 좋아지는 강력한 데이터 플라이휠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AI의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부하고, 수정한 내용들은 어떤 제안이 좋고 나쁜지에 대한 귀중한 데이터가 된다. 이 데이터는 다시 AI 모델과 제품을 개선하는 데 사용되어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트루는 “이것이 제품과 기반 모델을 더 좋게 만드는 정말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그는 이 경쟁이 ‘아이폰 모멘트’와 같은 혁신을 누가 먼저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라고 본다. 그는 “우리 시대의 아이팟이나 아이폰 모멘트와 같은 기회가 이 분야에 몇 번 더 남아있다”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그 미지의 영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마이클 트루와 커서가 그리는 미래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선다. 이는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의 종말이자, 인간의 창의성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코드를 한 줄씩 입력하는 대신, 아이디어와 논리를 설계하는 ‘로직 디자이너’의 시대가 오고 있다.
트루는 “앞으로 10년은 무언가를 만드는 당신의 능력이 엄청나게 증폭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세상, 그것이 바로 커서가 꿈꾸는 ‘지능의 시대’의 모습이다. 살아있기에 참으로 흥미로운 시대가 아닐 수 없다.
관련참고기사:Cursor CEO: Going Beyond Code, Superintelligent AI Agents, And Why Taste Still Matters